팬덤 현상

2011. 10. 13. 22:16노트/뉴스보기

"그만 좀 하시죠" 팬들에 두손든 김연아 모친, 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1.10.11 00:05 / 수정 2011.10.11 08:36

대마초를 한약이라고 우기고, 집 앞에 진치고, 상대를 희대의 악마로 몰고…
도 넘은 팬덤에 당사자들 "진짜 힘들다. 오지마라. 그만하라. 다시는 쇼 안한다" 폭발

<사진=중앙포토>

팬덤(fandom). 광신도를 의미하는 '퍼내틱(fanatic)'과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덤(dom)'이 합쳐진 단어다. 특정 유명인을 광적으로 추종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일종의 광적 팬클럽이다. 유명인이 잘못해도 무조건 옹호하고, 그의 잘못도 잘 한 것으로 포장하기 일쑤다.

최근 인기 아이돌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 사례도 대표적인 팬덤 사례다. 대마초를 흡연해 기소 유예(범죄를 저질렀으나 처벌을 미룬 것)됐으나 일부 팬들이 "다른 나라에서 대마초는 합법이다" "담배와 뭐가 다르냐"며 무조건식 편을 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마초는 한약이다"는 어이없는 글까지 떠돈다. 스타를 지나치게 감싸는 행동이 꼴불견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집착→ 떼쓰기→비방=지드래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10대들이 모이는 주요커뮤니티, 팬 카페와 트위터 등엔 "억울하다" "별것도 아닌데 욕하지 말라"는 글이 잇따랐다. "정부가 정치 관련 폭로 기사를 막으려 지드래곤 사건을 터뜨렸다"는 글부터 "대마초도 한약이다"는 어이없는 글까지 올라왔다. 배우 김부선이 2009년 모 방송에서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다. 엄밀히 한약으로 우리 민족이 5000년간 애용해 왔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 말을 핑계삼은 것이었다. 빅뱅과 경쟁하던 다른 아이돌의 팬들은 "샘통" "이젠 우리 오빠들이 뜰 차례"라며 비아냥댔다. 철없는 공방을 지켜보는 네티즌들은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팬덤이 언제부턴가 스타를 좋아하는 모임이란 순수한 의도를 잃어가고 있다.
일방적으로 떼를 쓰고,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데 열을 올린다. 얼마 전 모 아이돌 그룹 팬들이 "OO가 게이라더라" "OO는 이제 한물 간 퇴물"이라며 다른 그룹을 비방하다 해당 팬 클럽과 크게 싸움이 붙기도 했다. 2009년 그룹 2PM에서 퇴출당한 가수 재범과 2PM 팬들간의 다툼은 치열했다. "어떻게 멤버를 버릴 수 있느냐" "피해를 준 사람은 나가는게 맞다"며 공방을 벌였다.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는지 재범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팬덤끼리 다툼은 이제 그만하고, 서로 잘 지냈으면 한다"며 당부하는 글을 남길 정도였다.

스타의 열애설은 이들의 '코털'을 건드리는 사건이다. 서태지와 이지아의 결혼·이혼이 세간에 알려지자 일부 극성 팬들은 이지아를 희대의 마녀로 몰고 갔다.
이지아는 순식간에 신상이 털렸다. 이외에도 서태지와 열애설이 불거지는 여배우는 한동안 끔찍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팬 클럽이 모임이 아닌 '조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폐단도 생기고 있다.
지난해 걸그룹 티아라의 팬 카페 운영진이 운영비를 횡령한 사건이 벌어졌다. 3만여 명의 회원들이 선물을 사기 위해 이른바 '조공비'를 모았는데, 운영진이 이를 가지고 잠적한 것이었다. 비대해진 팬 클럽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감시하는 안전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었다.

◇넘치는 사랑? 스타를 옥죈다=
도를 넘어선 사랑은 스타에게 부담이 된다. 극성스럽기로 소문난 김연아의 팬들은 2009년 김연아 아이스쇼에 모 여성 그룹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연아와 격이 맞지 않는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아이스쇼 홍보 사이트에 나온 출연진 사진에 대해서도 "김연아가 덜 부각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터넷에서 반발이 커지자, 결국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는 한 피겨 사이트에 '그만들 좀 하시죠'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번 쇼 이후로 다시는 연아가 아이스쇼에 서지 않겠다"고 했다. 극성에 두손두발을 든 격이었다.

사생활을 캐는 이른바 '사생팬'도 연예인에겐 골칫거리다.
JYJ의 멤버 박유천은 트위터에 "집 앞에 있는 분들 돌아가달라. 진짜 힘들고 싫다" "제발 좀 따라오지 마세요. 집 앞에도 오지 마세요" 등의 글을 올리며 수 차례 괴로움을 호소했다. JYJ의 또 다른 멤버 김재중도 트위터에 "스타라면 감수해야 할 것치곤 좀 지나치고 싫지 않은가. 7년 동안 밥 먹을 때, 일할 때, 휴식을 취할 때, 집에 들어갈 때마저 죄인처럼 눈치를 보고 숨어 다녀야 하는 게 정상적인 생활인가. 그만해라"며 울분을 토했다.

고려대 현택수(사회학) 교수는
"맹목적인 팬덤 문화는 사회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결국 이미지를 깎아 내려 스타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팬들이 감정에 치우쳐 그릇된 판단을 할지라도 연예인 본인이 중심을 잡고 이성적인 처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씨는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는 일종의 그릇된 팬덤 문화가 빚어낸 세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티'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된다"며 "눈덩이처럼 불어난 안티팬덤이 언제 또 끔찍한 피해자를 만들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진희 기자

>>> 미디어 매체의 영향력이 강한 현대 사회에서 스타가 사람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관심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다. 현재 광신적인 추종을 뜻하는 '팬덤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스타는 관심을 먹고 산다고 한다. 스타에게 분명 꼭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사생활에서 스타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일 뿐이다. 스크린에서의 관심이 일상 생활로까지 집요하게 이어짐으로 인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 감내해야한다고 치부하기엔 도가 지나친 사례가 많다.
반면, 특정 스타를 심하게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안티팬. 그들이 내지르는 온갖 비방에 연예인은 한 인간으로서 자아에 상처를 받는다. 긍정적인 방향으로든 부정적인 방향으로든 지나침은 화가 되는 것이다.